생활스포츠 지도사 보디빌딩 심화학습 17. 보디빌딩 도핑 4편: 제2장. 보디빌딩 도핑의 진화와 발전

2024. 7. 19. 16:00생활스포츠지도사 2급 보디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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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제2장: 1960년대~1970년대, 보디빌딩 도핑의 발전과 도핑 예외적 분야로의 인식

  미국 서부 해안은 보디빌딩, 체육관 및 피트니스 문화 발전의 용광로였다. 1930년대 후반과 40년대에는 머슬 비치라 불리는 산타모니카 해변이 보디빌딩 문화를 규정하는 장소가 되었다. 이곳은 열정적인 1950년대의 운동인들이 스티브 리브스(Steve Reeves)와 같이 우상적인 몸매를 감살할 수 있는 장소로 변했는데, 스티브 리브스는 특출난 근육질 데피니션과 미적인 매력을 가진 사람으로 유명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스티브 리브스를 유명하게 만들었던 이상적 기준은 점차 변하기 시작한다. 1960년대 초, 머슬비치는 문화의 변화가 시작된 인 베니스 비치(Venice Beach)라는 더 좋은 위치로 여겨지는 장소로 이동한다. 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Locks와 Richardson이 2012년 기고한 논문에서는 이러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1) 보디빌더의 데피니션이 보다 우수해지기 시작한 이유는 다름아닌 이뇨제의 도입이었다. 이뇨제는 신체의 수분량을 큰 수치로 감소시켜 훨씬 더 높은 수준의 근육과 데피니션을 보여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2)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수준의 근육량 비대를 추구하는 급격한 변화가 이 시기에 출판된 보디빌딩 잡지 속 보디빌더들의 모습에 반영되어 있다. 이러한 변화의 원인은 부분적으로는 보다 효과적인 운동방법과 식단에 있기도 했으나, 보다 중요했던 것은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의 도입에 있었다. 스테로이드는 새로운 미국 고전주의(New American Classicism)의 주요 골조를 이루었고, 이는 스티브 리브스를 향수를 일으키는 과거의 이상(ideal)으로 만들게 되었다.

  1970년대는 체육관 문화와 보디빌딩 문화가 꽃을 피우는 시기였다. 다소 목적이 없고, 남성적이며, 동성적 문화라는 인식, 그리고 하위문화라는 지위에서 벗어나며, 보디빌딩은 다시 태어나게 된다. 작은 체육관에서 시작한 베니스 비치의 골드짐(Gold's Gym)은 점차 발전해 전 세계적인 프랜차이즈로 탈바꿈하게 되었고, 보디빌딩의 문화적 중추 역할을 맡게 된다. 이러한 발전을 이루게 만든 추진 요인 중 하나는 1974년 개봉된 다큐멘터리 영화 '펌핑 아이언(Pumping Iron)'이었다. 이 영화에는 1975년 미스터 올림피아와 미스터 유니버스 대회를 준비하는 보디빌딩의 아이콘인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비롯한 여러 보디빌더들의 모습이 담겼다. 아놀드의 성공으로, 최소한 남성들 사이에서, 운동을 하며 근육을 키우는 것은 표준이 되었고, 그 영향은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게까지 미치게 된다. 헬스클럽 산업은 또한 건강이라는 더 넓은 범위의 일부로 발전되었고, 심장마비와 관상동맥 질환의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이 당시의 많은 기업들은 그들의 직원들에게 운동을 위한 시설과 기회를 제공했다. 운동은 도시의 중산층 독신자 삶의 일부가 되었다. 보디빌딩의 발전에 맞추어 피트니스 붐이 일어났고, 이를 통해 제인 폰다(Jane Fonda) 등은 '훈련/운동(work out)'이라 부르는 특정 형태의 춤과 체조를 개발하고, 개별화되고 건강한 신체의 이상적 모습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건강한 신체에 대한 문화적 영역은 부분적으로 나뉘어 있었지만, 아놀드의 신체와 보디빌딩은 이러한 발전에 있어서 하나의 결합체 역할을 수행했다. 아놀드는 마음을 굳게 먹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정신, 즉 아메리칸드림을 구체화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체육관을 자주 찾지 않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중량 부하 운동을 하나의 공통된 운동 형태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다. 또한 동시에 보디빌딩을 보다 더 극단적인 것으로, 신체의 발달, 크기, 혈관의 측면을 강조하는 하위문화로 만들기도 하였다.

  이로인해 신체적 완벽함이라는 이상은 '괴상'하며 충격적인 가치의 극단으로 치달았고, 1970년대 아놀드와 보디빌딩 또한 스테로이드의 시대로 들어가게 된다. 합성 테스토스테론의 실험적인 사용은 이미 1950년대 미 서부 해안의 수많은 체육관에서 이미 발행하긴 했으나, 더 적은 부작용을 가진 맞춤화된 상품으로 발전한 새로운 유형의 약물이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바로 1970년대에 들어서였다. 따라서, 이 당시 스포츠계에서 도핑 약물의 사용이 강력한 비난과 예방 조치에 직면한 반면, 보디빌더 체육관 및 피트니스 문화계에서는 약물의 사용을 크게 문제 되지 않는 것으로 보는 것이 대세였다. 예를 들어, 아놀드가 2012년에 출간한 두 번째 자서전 'Total Recall: My Unbelievably True Life Story'에서 그는 자신의 관점을 드러냈는데, 스테로이드가 당시 시장에 널리 퍼져있었고 의사의 관리감독 하에서 사용되었기 때문에, 자신은 스테로이드의 사용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서술했다.

  1970년대는 실험의 시기였고, (피트니스) 도핑에 대한 법안은 여전히 매우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예를 들어, 조직된 스포츠계 범위를 벗어난 분야에서의 스테로이드는 합법적일 뿐만 아니라, 특히 국제적인 보디빌딩 분야에서는 어느정도 받아들여지는 것이었다. 따라서, 먼저 이러한 발전과 금지약물에 대한 관점은 논의되고 있는 시기의 특수성을 감안해서 이해되어야 할 필요가 있고, 일반적인 약물 사용 실험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은 1960년대와 70년대에 두드러졌다고 봐야 한다. 두 번째로는, 아놀드의 말처럼, 제약회사들이 신체의 생화학적, 생리학적, 정신적 기능을 변화시킬 수 있고, 잠재력은 크며, 독성은 덜한 약물을 찾고 개발하는 '약리학적 혁신'이 점차적으로 이루어졌다. 놀라울 것 없이, 경쟁 스포츠에 참여하는 선수들 뿐만 아니라, 보디빌더들도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신체적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목적으로, 그들의 체력적 한계까지 밀어붙이거나 또는 뛰어넘기 위해 사용하는 이러한 화학적 물질에 더 큰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다음 포스팅에 계속.

 

출처)

Andreasson, J. et al. (2019). Bodybuilding and Fitness Doping in Transition. Historical Transformations and Contemporary Challenges. Social Science. 8. 80. 10.3390/socsci8030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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