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스포츠 지도사 보디빌딩 심화학습 16. 보디빌딩 도핑 3편: 제1장. 보디빌딩 도핑의 시작과 기원

2024. 7. 18. 16:00생활스포츠지도사 2급 보디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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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디빌딩의 역사, 변화 및 현재의 문제점

1.1. 제1장: 1900년대~1960년대, 보디빌딩 도핑의 시작

  연금술사가 금을 만드는 마법의 공식을 찾았던 것과 같이, 사람들은 경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마법의 약물'을 찾고, 그들이 설정한 목표 달성을 위한 지름길을 찾았다. 고대 그리스와 같이, 육체적으로 뛰어난 신체와 헤게모니적(패권을 얻을 수 있게 하는) 신체 이상에 접근하는 것에 대한 가치 및 그 추구 방법에서, 수행과 외모를 증진시키는 약물(Performance and Image-Enhancing Drugs, PIED) 사용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피트니스를 위한 도핑역사의 보다 현대적인 시기는 1900년대 초반으로 볼 수 있고, 이를 신체 문화(Physical culture)의 발달(기)이라고 일컫는다.

  주로 미국을 근거지로 하여, 신체 문화의 발달은 강하고, 근육질적이며, 남성적인 신체를 형성하고 발달시키기 위한 기술을 가져왔다. 스웨덴과 덴마크 및 독일의 체조 운동에 영향을 받은 미국 과학자들은 국제적이고 점진적으로 그들의 초점과 관심을 체육 교육으로 전환했고, 건강과 힘을 증진시켰다. 이 당시의 체육 지지자들과 의료계는 과도한 근육 발달을 장려하지 않았고, 근육 성장이 아닌 체조와 위생 관리에 집중하였다. 1893년 보디빌딩의 아버지라 불리는 스트롱맨 유진 샌도우(Eugen Sandow)가 미국으로 넘어왔는데, 그의 도착 초기에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당시의 태도와 흐름을 감지한 유진 샌도우는 그 자신을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남자가 아닌 세계에서 가장 (신체적으로) 발달되고 완벽한 남자라고 홍보했다. 더불어, 의료계는 신체 문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베르나르 맥파든(Bernarr MacFadden)에게 유진 샌도우보다 훨씬 더 큰 비판을 하며, 그를 나르시시스트(자아도취에 빠진 사람)라고 불렀다. 당시 존경받던 의료계 구성원들은 맥파든을 품위가 전복된 존재이자 남성성과 여성성의 자연적 경계를 위협하는 자로 보았다.

  그러나, 근육질의 신체에 대한 인식은 점차 바뀌게 된다. 1930년대 초반과 1940년대의 초기 보디빌딩 대회는 현대 문명의 붕괴를 되돌리기 위해 보디빌딩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초기에는 자연스러운 신체를 보여주는 것을 강조했다. 따라서, 편안함, 우아함, 그리고 자연스러움에 대한 개념이 참가자들의 모델로서의 성공에 중요한 요소였다. 점차 고대 그리스의 이상적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아폴로적 완벽함에 대한 고전적 이상은 사라져 갔고, 적갈색으로 태닝 된 몸매의 소유자들이 캘리포니아 해변을 채워나갔다.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에 들어 PIED가 보디빌딩계에 도입된다. 과거와 달리 이 시기의 의사 및 의료계는 근육질의 신체에 비판적이지 않았고, 되려 기술의 진보에 대한 매력이 커져가고 있었다. 19세기말 근육질의 남성 신체에 대한 의료계의 회의적 입장과 달리, 이 당시 근육질의 남성 신체는 진보의 상징이자 신체와 신체의 성장을 성공적인 과학적 조절로 이루어냈음을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다.

  1954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개최된 세계 역도 챔피언십에서 미국인 의사인 John B. Ziegler는 어린 러시아 선수가 테스토스테론을 사용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그는 귀국 후 테스토스테론에 근거한 합성 약물을 조제한다. 그가 만들어 낸 다이아나볼(Dianabol) 약물은 큰 성공을 거둔다. 1960년대 많은 보디빌더는 '다이애나볼, 챔피언의 아침 식사(Dianabol, Breakfast of Champions)'라고 인쇄된 티셔츠를 입기도 했다. 이를 위해 보디빌딩 분야에서의 약물 사용과 스포츠 도핑의 역사는 많은 부분을 공유했다. 이러한 역사는 냉전의 틀과 동독 및 미국과 같은 곳에서 이 시기에 나타난 도핑에 대한 여러 접근 방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57년 미국 의학 협회는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는 암페타민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는데, 1950년대 중반은 도핑 방지 운동이 처음으로 일어나기 시작한 기간이며, 이 기간 이후로 현재에 이르러 WADA가 도핑 방지 단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현재까지 연구된 바에 따르면, 스테로이드 사용의 진원지는 전설적인 '뉴욕 바벨 클럽(New York Barbell Club)'이라는 곳의 웨이트 트레이닝 수행자 또는 역도 선수들로 밝혀졌다. 스테로이드의 사용은 체육관 및 피트니스 센터뿐만 아니라, 다른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빠르게 전파되었다. 그러나, 1967년 올림픽 위원회는 PIED에 해당하는 약물을 불법으로 규정한다. 약물 사용자라는 낙인이 찍히는 과정은 초기에는 상당히 초보적인 수준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 시기에 약물에 대항하는 오랜 기간의 투쟁이 시작되었다. 결론적으로, 체육관과 피트니스 문화의 문맥에서, PIED 사용 역사의 첫 페이지는 현대 사회와 현대 스포츠와의 동맹과 함께, 그리고 그 동맹 내에서 쓰여진다. 1900년대 전후에서 1960년대까지 이어지는 이 기간은 낙관주의, 과학적 탐구, 현대성, 그리고 스포츠뿐만 아니라 보디빌딩에서 사용되는 약물의 역할에 대한 순진한 이해라는 특징을 갖는다. 이러한 특징은 두 번째 기간을 거치며 점진적으로 변화한다.

 

다음 포스팅에 계속.

 

출처)

Andreasson, J. et al. (2019). Bodybuilding and Fitness Doping in Transition. Historical Transformations and Contemporary Challenges. Social Science. 8. 80. 10.3390/socsci8030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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