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4. 16:38ㆍ생활스포츠지도사 2급 보디빌딩
1. 고대의 보디빌딩
현대 보디빌딩의 역사는 이전 포스팅에서 다루었듯이 유진 샌도우에 의해 정착되기 시작했으나, 보디빌딩 자체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와 이집트 시대에서부터 존재한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반적인 운동으로서의 웨이트 트레이닝은 고대 그리스와 이집트 시기에 힘을 기르고 그 힘을 측정하기 위한 수단으로 수행되었다.
당시에는 다양한 크기와 무게의 돌을 활용하여 신체를 단련했는데, 근육이 발달된 신체는 그리스인의 이상 중 하나에 해당되었기 때문에 추앙받았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등장인물(신) 조각상을 보면 남성의 대부분은 매우 근육질이다. 실제로 그러한 인물이 실존했기 때문에 그들을 본떠 조각을 했을 것이라 추측되고, 이 때문에 유진 샌도우 또한 그리스 조각상을 토대로 운동을 연구했다.
2. 11~17세기 인도의 보디빌딩
11세기 인도에서는 날스(Nals)라고 불리는 돌로 만든 덤벨이 발견 되었는데, 일상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건강과 스태미나의 증진을 위해 신체를 단련하기 원하는 인도인들이 이를 활용했다. 당시 체육관은 흔한 장소였고, 16세기까지 웨이트 트레이닝은 인도인들의 대중적인 여흥시간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인도의 중세 역사를 잠시 살펴보면, 12세기부터 이슬람 왕조가 성쇠를 되풀이하였고, 16세기 무굴제국이 인도를 통일했다. 따라서 인도에서의 보디빌딩은 인도가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로 군림하던 중세시대경에 활발히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17세기 영국의 침입으로 내리막을 걷게 된다.
3. 19세기 보디빌딩
19세기 보디빌딩은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하는데, 이때의 보디빌딩은 오락적인 요소를 갖춘 역도의 형태로 나타난다. 체격을 멋지게 만드는데 목적을 두지 않고, 대중이 놀랄만한 힘을 보여주는 것이 초점이었다. 따라서, 당시의 운동인들은 보디빌더라기 보다는, 강렬한 웨이트 트레이닝을 실시하는 스트롱맨으로 볼 수 있다. 스트롱맨 대회는 스트롱맨들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보다 더 무거운 무게를 들 수 있는지를 겨루는 일종의 도장 깨기 형태로 나타났다. 무거운 것을 드는 것뿐만 아니라 카트를 끌거나 동물을 들어 올리는 등 관람객에게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는 종목도 존재했었고, 대중들은 이러한 경쟁을 즐겼다. 기능적 탁월성과 힘이 중심이 된 대회였으므로 선수의 체격, 균형, 미학적인 부분은 평가나 감상의 대상이 아니었다. 실제로 당시의 스트롱맨은 배가 나오고, 두껍고 뚱뚱한 팔다리를 갖고 있었다.
4. 현대 보디빌딩의 시작
20세기에 이르러 과체중에 보기 좋지 않은 외모를 가진 스트롱맨과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보디빌더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사람이 등장했는데, 그가 바로 이전 포스팅에서 다루었던 유진 샌도우이다. 그는 스트롱맨의 힘과 기능 그리고 보디빌더로서의 미학적인 관점 모두를 갖춘 사람으로, 20세기 초 체육계의 아이콘 그 자체였다. 유진 샌도우의 등장으로 운동인들은 신체를 표현하는 미학과 일치하는 건강한 생활방식을 추구했다. 스트롱맨과 보디빌더의 전환은, 과거 적절한 식이 방식의 부재와 비만도가 높은 과체중 스트롱맨에 대한 식상함을 해소하고자 하는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조각 같은 신체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과 그러한 모습을 갖출 수 있는 방식을 찾기 시작하는 추세 속에서 나타난 유진 샌도우를 통해 이루어졌다.
4-1. 최초의 보디빌딩 대회
1891년 "The Great Show"라는 타이틀로 최초이자 프로토타입의 보디빌딩의 '쇼'가 유진 샌도우에 개최된 후, 공식적인 현대 보디빌딩 대회로 여겨지는 대회가 역시 유진 샌도우에 1901년 영국 Royal Albert Hall에서 여렸다. 1891년의 대회는 경쟁 대회의 형식을 띄었고 입장료를 받았지만 쇼의 형식이 강하고 우승이나 순위에 따른 상금이 없었던 반면, 1901년의 대회는 순위가 집계되고 상금이 수여된 진정한 '대회'였다. 보디빌딩 외의 종목도 함께 포함하여 대중의 주목과 인기를 받은 이 대회에는 60명의 보디빌더가 동일한 복장(검은 타이즈, 검은색 벨트, 표범 가죽)을 입고 무대에 서서 뚜렷한 기준에 의해 심사를 받았다. 그 기준에는 근육의 발달뿐만 아니라 근육 발달의 균일성 또는 균형, 조직의 상태와 색조, 건강 상태, 피부 상태까지 포함되었다.
4-2. 고유 영역으로서 자리잡은 보디빌딩
이후로 1920년대까지 보디빌딩 문화는 널리 퍼지게 되었고, 관련된 사업이 활기를 띄었으며, 보디빌딩의 인기와 더불어 건강 관리의 필요성에 대한 대중의 인식도 더욱 높아졌다. 보디빌딩에 특화된 바벨과 덤벨 등의 생산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고, 다양한 대회도 자주 열렸다. 이에 따라 보디빌딩은 역도의 영역에서 벗어나 고유의 영역을 확보하게 된다.
4-3. 1930년대 보디빌딩
1930대에 들어서 보디빌딩 지지자들은 트레이닝 테크닉과 장비들의 발전으로 인해 더욱 균형잡힌 신체와 체지방 감소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30년대는 보디빌딩의 황금기로 여겨지는데, 이 기간 동안 체육관, 그룹 트레이닝, 그리고 거울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것이 매우 흔해졌기 때문이다. 아마추어 및 프로 보디빌더들은 캘리포니아의 해변에 설치된 운동기구로 훈련을 하였고, 그중 가장 유명한 장소는 산타 모니카였기 때문에 산타 모니카는 '머슬 비치'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1930년은 또한 우리나라에 최초로 보디빌딩이 도입된 해이다. 체육교사였던 문곡 서상천 중앙체육연구소를 통해 역도와 보디빌딩(육체미)을 도입하고 소개했는데, 국내 보디빌딩의 역사는 따로 다룰 예정이다.
4-4. 1940~1960년대 보디빌딩
1940년대에는 보디빌딩이 기하급수적인 수준으로 발전했는데, 1946년 IFBB(International Federation of BodyBuildrs)와 1950년 NABBA(the National Amateur BodyBuilders Association)가 설립되어 최초의 대규모 보디빌딩 대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IFBB는 1965년 미스터 올림피아를 NABBA는 1950년에 미스터 유니버스를 개최하였다. 이때가 바로 보디빌딩에 문외한인 사람들조차도 알고 있는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등장한다. 1960년대 보디빌딩계를 장악한 아놀드는 영화계에 진출하여 할리우드 스타가 되었고, 그 뒤를 이어 보디빌더들이 영화에 등장하며 근육질의 신체가 대중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는 트렌드가 생겨났다. 이에 따라 웨이트 트레이닝 및 관련 산업의 수익성이 극대화된다.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도 존재하기 마련인데, 1960년대부터 일부 보디빌더들은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4-5. IFBB의 출범
1970년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첫 번째 IFBB 총회가 열렸고 이를 통해 보디빌딩은 현대 스포츠로 공식 인정을 받았다. 1971년에는 IFBB가 국제 스포츠 연맹의 회원이 되면서 보디빌딩을 공식적으로 대표하는 유일한 단체가 되었다. 1970년대 말에 이르러 100개국 이상에서 IFBB 지부가 설립되었다. 이에 IFBB는 스포츠계를 통틀어 6번째로 규모가 큰 조직으로 발전한다. 이 시기에 이르러 보디빌딩은 스포츠의 한 분야로 인정 받았고, 수십억 달러의 산업으로 발전했으며 주요 국가들에서 보디빌더 및 보디빌딩 인구가 증가하게 되었다.
4-6. 1980년대 보디빌딩의 성장 및 상업화
1980년대 보디빌딩은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을 통해 인기를 얻는다. 보디빌딩을 위한 훈련은 보디빌더 뿐만 아니라 영화배우 및 다양한 종목의 운동선수들에게 스스로를 홍보하거나 수행능력을 증진시키는 활동이 되었다. 이 당시 보디빌딩을 활용한 대표 사례는 영화배우 실베스타 스탈론과 척 노리스가 있고, 육상 선수 중에는 벤 존슨과 칼 루이스가 있다. 보디빌더들은 극단적인 신체 근육의 비대를 추구하게 되었고, 보디빌딩에 대한 인기는 더욱 높아져 상금과 스폰서십 또한 높아졌다. 보디빌딩의 아이콘이 된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1989년 아놀드 클래식 대회를 개최한다. 아놀드 클래식은 다른 피트니스 이벤트와의 협업을 확대했고,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선수권 이벤트로 발돋움하게 된다. 1980년에는 60년대 발간된 'Muscle Builder and Power'에서 파생된 'Muscle and Fitness'가 출간되고, 그 파생 잡지인 'Flex'지가 1983년에 발간되어 더욱더 보디빌딩이 유명해지도록 만들었다. 시간이 흐른 뒤 2004년, 아놀드는 머슬 앤 피트니스와 플렉스지의 편집장이 되어 각각 30회와 20회 표지에 등장한다. IFBB 설립자인 Ben Weider는 1980년대부터 그가 죽은 2008년까지 지속적으로 보디빌딩을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시키기 위해 IOC에 청원을 하였으나 끝내 채택되지는 못하였고, 단지 1998년에 예비 인준만을 받았으나 이 또한 2001년에 철회되었다.
4-7. 1980~1990년대 보디빌딩계에 존재하게 된 양날의 검
1980년대는 약물의 오남용이 확대된 시기이기도 하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의 사용도 증가하고, 한 가지 약물만을 사용하던 방식은 곧 여러 약물을 동시에 투여하는 상황을 낳게 되었다. 1980년대 말, 보디빌더들이 인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성장호르몬이나 인슐린까지도 투약하는 것이 매우 흔해졌다.
1990년대에 아놀드는 부시 대통령 직속 신체 건강 및 스포츠 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게 되고, 미국 대중들의 건강과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보디빌딩 계열의 운동을 활용하게 된다. 대중이 즐기는 보디빌딩과 달리, 보디빌딩 계는 1990년대를 거치고 2000년이 넘어가면서, 미학적이고 균형 잡힌 신체라는 보디빌딩 초기의 철학은 근비대 우선주의에 밀려 자리를 빼앗긴다. 최우수 선수라는 것은 곧 가장 큰 근육을 가진 선수라는 의미가 되었고, 많은 아마추어 및 프로 보디빌더들은 이 흐름에 편승하여 이름을 알리고 소득을 높이려고 시도했다. 그리고 선수들의 몸무게는 계속해서 늘어 갔다. 80년대 Lee Haney의 240 파운드를 넘어, Dorian Yates의 265 파운드를 넘어, 로니 콜먼은 290 파운드의 몸무게로 시합에 나갔다. 발전된 훈련 방법, 약물의 사용, 몸무게의 증가로 보디빌더의 근육은 더욱더 커지고 근육의 질은 훨씬 더 우수해졌다.
4-8. 2000년대 보디빌딩의 미디어 진출, 내추럴 운동과 그 한계
2000년대는 미스터 올림피아를 유료로 시청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ESPN에서는 Cory Everson 쇼를 통해 보디빌딩을 하나의 생활방식으로 다루는 등, 보디빌딩을 상업화하려는 다양한 미디어에서 보디빌딩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 이용의 확대로 수천 개의 보디빌딩 웹사이트를 만들어졌고 전 세계적 많은 사람들이 보디빌딩 정보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1998년 IOC로부터 올림픽 종목으로 예비 인준을 받았다가 2001년에 철회되었던 보디빌딩은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에 정식으로 채택되었으나 2006년을 마지막으로 다시 폐지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약물에서 벗어나자는 내추럴 운동이 일어났고, 잠재적으로 해로운 물질에서 벗어나 건강을 즐기자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그 일환으로 2005년에는 IFBB 또한 세계 반도핑 기구(WADA, World Anti-Doping Agency)의 세계 반도핑 규정을 채택하였다. 다만, IFBB는 현재 아마추어를 대상으로 하는 협회이고 프로를 대상으로 하는 IFBB Professional Section과는 별개이므로, 아직 프로의 세계에서는 도핑을 금지하고 있지는 않는 상황이다.
출처)
1. David Robson. (2019). A history lesson in bodybuilding. Bodybuilding.com
2. Conor Heffernan. (2016). Bodybuilding's First Champion: William Murray. Physical Culture Study.com
2. Schwarzenegger. (1999). The new encyclopaedia of modern bodybuilding. Fireside, NY
3. History of Bodybuilding. (2004). Bodybuilding history
4. Oldenburg, A. (2004). Editor Arnold: He's nothing if not flexible. USA Today, Gannett Co I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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