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스포츠 지도사 보디빌딩 심화학습 04. 여자 보디빌딩의 역사 2편

2024. 7. 6. 23:22생활스포츠지도사 2급 보디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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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nda Murray @bodybuilding.com

3. 1990년대의 여성 보디빌딩

1990년 the Women's Pro World contest가 취소되면서 Ms. Olympia로 가기 위한 예선전은 Ms. International만이 존재하게 된다. 이에 따라 IFBB는 프로카드를 소지한 모든 여서성에게 Ms. Olympia 출전을 가능하게 했고, 서른 명의 경쟁자가 출전하게 된다. 미시간에서 프로카드를 획득한 머레이(Lenda Murray)는 이 대회에서 우승을 함에 따라 1980년대의 애버슨(Cory Everson)의 후계자의 역할을 맡게 된다.

1991년, 새로운 프로 무대인 the Jan Tana Classic이 열린다. 이 대회는 2003년까지 지속되었다가 2007년에 잠시 부활한 대회로, 태닝 용품을 취급하는 회사에 의해 개최되었다. 같은 해, Ms. Olympia는 최초로 라이브 텔레비전으로 중계된다. 이때 머레이(Lenda Murray)의 경쟁자로 등장한 프랜시스(Bev Francis)로 인해 머레이는 자리를 힘겹게 지켜내는데, 이 결과에는 다소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1992년은 IFBB가 여성 보디빌딩을 '여성화'하려는 시도가 일어났다. 이전 미즈 올림피아에서 머레이와 프랜시스가 보여준 근육 크기의 장가, 양물 남용 및 약물 호르몬 부작용이 그 이유였다. 이에 따라, 현재에도 심사규정에 명시된, '과도한 근육'에 대한 감점 규정이 만들어졌다. 따라서 심사 기준은 '쇠약하지 않으며 여성스럽고 최적으로 발달된 체격'으로 바뀌었다. 이 규정에 맞추어 진행된 대회의 우승자는 170cm에 59kg이었던 파란 눈, 금발, 대칭적인 체격을 갖고 있었던 독일의 슈뢰이너(Anja Schreiner)가 차지했다. 그러나 여전히 미학보다는 크기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IFBB는 근육보다 시장성을 갖춘 미적 체격을 추구하는 괴리가 생겼다. 슈뢰이너의 우승은 결국 관계자들로부터 많은 야유를 받았고,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물러나는 결과를 낳는다. 이 대회는 또한 8위를 차지한 버컴쇼(Paula Bircumshaw) 때문에도 논란이 되었는데, 그녀는 슈뢰이너와 비슷한 체격과 균형미를 갖춘 선수였다. 하지만 그녀는 훨씬 더 큰 근육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바뀐 규정에 의해 순위는 8위에 그쳤다. 일반적으로 우승자가 발표될 때면, 10위까지의 선수가 무대 위로 호명되는데 이 대회에서는 버컴쇼의 재등장을 원치 않은 협회 측에 의해 의도적으로 6위까지만 호명되어 무대 위에 오르게 된다. 관중들 사이에는 큰 소란이 일어나고 버컴쇼를 연호하기 시작했다. 결국 버컴쇼는 무대로 다시 올라오게 된다. 버컴쇼는 같은 해 치러진 Ms. Olympia에서 여성성 또한 갖추고 있는 머레이에게 밀려 6위에 올랐고 이후 은퇴하게 된다.

1992년의 실패 이후 심사 기준이 새로 정립되었고, 그 심사 기준은 미학적 기준을 유지하면서 체격에 초점을 맞춘 대회로서의 성격을 유지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았다. 머레이는 1990년에서 1995년까지 연속으로 보디빌딩계를 지배했고, 애버슨의 6회 연속 미즈 올림피아 타이틀 석권과 동일한 기록을 남겼다. 

1994년에는 캐나다 프로와 프라하의 그랑프리 등의 대회가, 1996년에는 슬로바키아 그랑프리 등이 추가되었고, 참가자들은 해당 대회를 통해 상금을 받을 수 있었고, 미즈 올림피아의 예선을 겸하는 대회로 치뤄졌다.

1990년 중반 보디빌딩은 '도리안의 시대' 즉, '약물의 시대'인 만큼, 여성 보디빌딩계도 약물로 점철되었다. 1996년 니콜스(Kim Chizevesky-Nicholls)는 미즈 인터내셔널에서 우승하고 미즈 올림피아에서 우승하며 6연속 우승자인 머레이를 제압했다. 니콜스는 미즈 인터내셔널과 미즈 올림피아에서 동시 우승한 최초의 프로 여성 보디빌더로 기록된다. 이후에도 그녀는 꾸준히 각종 대회에서 우승하게 되고 머레이는 1997년 패배 후 은퇴한다. 니콜스는 1999년 미즈 올림피아에서 우승한 후 2000년에 은퇴하는데, 그녀는 IFBB가 여성들에게 스포츠에서 여성에게 근육보다 여성성을 강조하는 성차별적 원칙을 세웠기 때문에 은퇴한다고 밝혔다.

1998년부터 2011년까지, IFBB는 이뇨제, 스테로이드, 성장 호르몬 등이 사인으로 작용되어 죽은 선수들을 대상으로 오직 이뇨제만을 검사했었다. 이뇨제만을 약물 검사 대상으로 지정한 이유는 이뇨제가 스테로이드, 경기력 향상 물질, 성장 호르몬보다 더 치명적이었고, 해당 기간 동안 IFBB는 올림픽 위원회로부터 임시 승인도 받았던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후 여러 선수가 이뇨제 사용이 검출되어 실격처리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나, 2002년에 이르러 미즈 올림피아에서는 이뇨제 테스트가 조용히 중단된다.

1999년 10월 캘리포니아 산타 모니카에서 개최 예정이었던 미즈 올림피아가 예정일 한 달 전 낮은 사전 티겟 판매 이슈와 재정적 문제로 취소된다. 하지만 장소가 뉴저지 세코커스로 바뀌고 주최 담당자도 바뀌면서 다시 활발한 활동이 시작된다. 다양한 스폰서십이 체결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는데, 특히 Flex 잡지는 50,000달러를 후원했다.

 

4. 2000년대 여성 보디빌딩

2000년 IFBB는 프로 여성 보디빌딩에 세 가지 주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첫 번째는 체급으로 라이트웨이트와 헤비웨이트로 선수를 구분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 미즈 올림피아는 별개의 대회로 개최되지 않고 Olympia Fitness & Performance Weekend에 통합되어 미스터 올림피아 개최 전 날 열리게 되었다. 세 번째, 프레젠테이션이 새로운 심사 기준에 추가되었다. 이는 지금까지 지속되는 기준으로, 건강한 외모, 얼굴, 메이크업 그리고 피부톤도 평가의 대상이 된 것이다. 여성성은 여전히 심사 기준에 포함되어, '대칭, 프레젠테이션, 분리도, 근육발달정도'에 더불어 '극도로 발달된 근육 제외'가 명시되어 있었다.

2001년 미즈 올림피아에서는 버그만(Juliette Bergmann)이 12년의 공백을 깨고 우승을 차지한다. 지난 10년간 선수가 아닌 IFBB 프로 심판으로 활동하던 그녀는 무대로 복귀하여 라이트웨이트와 미즈 올림피아 종합 우승을 거머쥔다.

2002년 미즈 올림피아에서는 머레이가 5년의 공백 후에 복귀하여 헤비급과 미즈 올림피아 종합 우승을 차지한다. 2002년 IFBB GNC Show가 개최되는데 애매한 시기와 광고 부족으로 큰 인기를 얻지 못했고, 2004년을 마지막으로 사라진다. 2004년 미즈 올림피아에서 카일(Iris Kyle)이 머레이를 꺾고 헤비급 우승을 차지했고, 미즈 올림피아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며 1996년 니콜스가 세운 한 해 두 개 대회 동시 석권의 두 번째 주인공이 된다.

2003년, 보디빌딩보다 부드럽고 작은 체격을 대상으로 여성 피겨 종목이 생겼다.

2004년은 IFBB의 '20% 룰'이 발표된다. 미적 이유와 건강을 이유로 여성 보디빌더는 그들이 참가하는 종목이 보디빌딩이나 피트니스 또는 피겨인 것과 관계없이 모두 근육의 양을 20% 줄이라고 요구했고, 이 또한 과거와 마찬가지로 많은 동요를 일으켰다. 많은 여성들은 왜 그들이 운동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체격을 줄여야 하는지 물음표를 던졌다.

2005년 IFBB는 미즈 올림피아에서 체급을 다시 없앤다. 같은 해 '슈퍼사이즈 쉬'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되었고, 영국 여성 보디빌더 토마스(Joanna Thomas)의 2004 GNC show와 같은 해 미즈 올림피아 준비 및 경쟁 과정을 다루었다.

2008년 마틴 쉘러(Martin Schoeller)는 '여성 보디빌더들(Female Bodybuilders)'라는 책을 낸다. 이 책에는 63명의 여성 보디빌더가 2004년 미즈 올림피아에서 2008년 IFBB New York Pro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대회에서 촬영된 클로즈업 초상화가 담겨있다.

 

5. 2010년대 여성 보디빌딩

2010년 여성 피겨보다 더 부드럽고 더 작은 체격을 대상으로 여성 비키니 종목이 생겼다.

2012년 아이리스(Iris Kyle) 다리 부상을 겪는 와중에 Yaxeni Oriquen-Garcia가 미즈 인터내셔널의 우승을 차지하지만, 아이리스는 2012 미즈 올림피아에서 이를 설욕한다. 아이리스는 총 8회의 올림피아 종합 우승, 2회의 헤비급 우승을 기록하는데, 이는 Lee Haney와 로니 콜먼의 8회 올림피아 우승을 넘어서는 것이고, 머레이와는 타이기록이 된다. 더불어, 7회 연속 올림피아 우승 기록은 애버슨과 머레이의 6회 연속 올림피아 우승 기록을 뛰어넘는다.

2013년 아놀드 스포츠 페스티벌의 프로모터인 Jim Lorimer는 2014년에 있을 아놀드 클래식 212 프로 남자 보디빌딩 대회가 미즈 인터내셔널 여성 보디빌딩 대회를 대체하여 개최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 25년 간 미즈 인터내셔널을 통해 여성 보디빌딩을 지원한 것에 뿌듯함을 느끼지만 팬의 요구에 따라 2014년에는 아놀드 클래식 212를 도입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2013년 미즈 올림피아에서 아이리스는 통산 아홉 번째 올림피아 우승을 차지하고, 남녀를 불문하고 보디빌더로서 가장 많은 올림피아 종합우승을 차지한 사람이 되었다. 2014년 그녀는 또 한 번 우승하며 자신의 기록을 경신해, 10회 올림피아 종합우승, 9 연속 올림피아 우승으로, 모든 남성여성을 제치고 독보적인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후 그녀는 은퇴 의사를 밝혔는데, 2015년에는 미즈 올림피아가 개최되지 않아, 그녀의 은퇴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2013년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열린 IFBB 총회에서 여성 보디빌딩은 여성 피지크로 완전히 대체된다. 2014년 그 내용을 발표하며, 1980년부터 시작된 미즈 올림피아는 더 이상 개최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후로는 미즈 피지크 올림피아, 미즈 피겨 올림피아, 미즈 비키니 올림피아 카테고리가 남아, 이전보다 더 작은 체격을 대상으로 대회를 진행했다. 여성 피지크는 모스트 머스큘라와 같은 특정 포즈가 금지되었다. 이전부터 시작된 여성성에 대한 강조가 이어져온 결과이다.

2015년 Wings of Strength는 Rising Phoenix World Championships의 개최를 알리고, 미즈 올림피아의 명맥을 이어간다. 이후로 Alina Popa, Margaret Margie Martin 등의 선수가 활약하게 된다.

 

이후로 2020년대까지 여성 피지크, 피트니스, 비키니 종목이 이어지고 있고, 여전히 여성 피지크는 과도한 근육에 대한 경계를 강조하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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